90년대 컴퓨터 공학 이야기 (16) — 컴퓨터 이름 짓기 — 내 친구 sneezy

인터넷 시대에 이름 지어 주기

인터넷이 아주 열심히 도입되던 격변의 시기, 당시 집에서 인터넷은 거의 안되고, 모뎀을 이용한 PC 통신은 그래도 좀 퍼졌으며, 전용선이라는 건 공공기관에나 있던 시기. 당시 대학교들은 ac.kr 의 class B network address 를 가지고 있었고, 학교는 snu.ac.kr 에 학과별 혹은 연구실 별로 address range 와 이름을 ‘찜’하던 기억들이 있다. 당시 막내 대학원생이어서 심부름을 했던 것들과 각종 카더라 루머들에 대한 이야기들.

archi.snu.ac.kr

우리 연구실 ‘컴퓨터 구조 및 망 연구실’은 통상 ‘아키랩’으로 불렸었고, archi.snu.ac.kr 을 썼다. 계정은 충돌이 일어날 때까지(?) 이름 그대로 id 로 가자고 해서 csjung@archi.snu.ac.kr 이 당시 쓰던 계정. 계정은 연구실 관리자에게 등록하면 되었지만, 기계 이름은 중앙에 승인 신청을 해서 받아 오는 방식이었다. 불문률로 사람 이름을 기계 이름으로 놓지는 안는다고 했었다.

지도교수님이셨던 민상렬 교수님은 민들레를 좋아하셔서 방의 컴퓨터가 dandelion 이었더랬고, 지금 훑어 보니 iris , theory , davinci 등 낯익은 이름들이 아직 보인다. 그러고 보니 지금 컴퓨터 공학부가 쓰고 있는 cse 도 옆 연구실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당연하게 전산과와 전기과와의 이름 선점 충돌들이 있던 시기였고, DB 연구실 선배들이 전산과를 이기고 db 를 가져왔다고 기뻐했던 기억도 있다. 뭘 주고 뭘 받아 왔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sneezy

연구실에서 개인용 PC 가 인터넷에 연결해서 생기기 전, 몇몇 워크스테이션이 이름이 지어져 있었는데, 그 중 내가 만졌던 녀석의 이름은 sneezy 이다. 2년간 주인 잘못 만나 고생 많이 한 불쌍한 녀석인데…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장이의 이름 중 하나로 코를 훌쩍거리는 녀석? 분? 의 이름이라 한다. 백설 공주를 요약본으로 접하고 한 번에 일곱 난장이들을 묶음으로 보아 와서 그녀석이 그녀석 같아 보여 잘 모르지만, 원전과 애니메이션에는 나름 족보도 있는 녀석이라 한다.

구글이 알려 주는 sneezy

more dwarfs

교수님께서 미처 다가올 폭풍 미래까지 보신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당시 4–5대 있던 비싼 기계들을 위해해 일곱 난장이 이름을 맡아 놓으셨다고 하셨다. 아래는 그 이름들.

연구실 선후배동기들이 썼던 grumpy , sleepy , dopey 는 같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당시에도 알았는데, bashful 도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 지고, 당시 뜬금 없이 연구실의 어두움과 잘 맞지 않았던 happy 도 같은 족보였구나 싶다. doc 은 이래저래 기억이 없다..

이후 넘쳐나는 기계들과 이름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많은 연구실들이 연구실 이름 뒤에 숫자를 붙이는 방식 혹은 사람 이름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흘러가게 된다. 낭만이 사라져가는 느낌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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