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컴퓨터 공학 이야기 (7) — 각종 약어들 — Very

Very 이외의 V 보신 분 ?

어릴 때 서예 학원을 다녔고, 한자가 섞인 신문을 보고 자라서 라는 핑계로 영어는 꽤 늦게 시작했던 기억이다. 컴퓨터 경진대회 이론반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게임들을 접하면서 제대로 된(?) 영어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오늘의 주제는 각종 약어들에 대한 기억들과 그 중에 “V” 는 여지 없이 Very 였던 기억들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한 내용들…

IC, LSI, VLSI

컴퓨터 경진대회용 약어집에서 아주 처음 나오는 단어로 IC (Integrated Circuits) 가 있었다. 회로라는 것은 동네 형들이 만지던 라디오 키트 정도에 집적이라는 한글도 생소했었고, 직접 회로가 아니고 집적 회로였다는 기억과, 나름 한자어는 그래도 국어사전, 옥편 등을 펼쳐 놓으면 알아들을 수 있을 만 하다는 기억이 같이 있다.

거의 같이 나오는 단어가 LSI ( Large Scale Integrated ) , VLSI ( Very Large Scale Integrated ) . 각각 한글로는 ‘고밀도 집적회로’, ‘초고밀도 집적회로’. ‘회로’는 어디 갔는지 모호한 기억과 Large 도 두리뭉실한데, Very Large 는 얼마나 큰 걸까 라는 생각과, 이게 더 커지면 어쩌려고.. 하며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집적’이라는 단어를 받아 들였을 때 난이도에 비해서 Large, Very 는 용어를 만든 사람들이 성의 없이 아무 편한 단어를 골라 든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더랬다.

VHDL

학부 1학년 2학기였는지, 2학년 1학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선배들로부터 악명 높은 툴을 배우게 될 거라는 이야기들과 함께 Synopsys 의 툴로 VHDL 을 다룬다 했었다. Basic 이 대부분의 경험, 이제 겨우 C 라는 신조어를 받아들이던 세계관에서도 신개념의 언어였고, 무려 하드웨어를 설계하다니 라는 신기함으로 새로운 것이었지만 꽤 재미나게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다. 이후로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만들어야 했고, 한편으로는 언어라고 불러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다루었던 툴과 언어이기도 하다.

VHDL 은 VHSIC Hardware Description Language, 여기서 VHSIC 은 다시 Very High-Speed Integrated Circuit , 여기서도 V 는 Very 였던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굳이 한글로 된 번역을 찾아가진 않았지만, 앞에서와 마찬가지도 Very, High 면 되나..? 꽤 신기하게도 이후에도 초 울트라 어쩌고 하는 것들은 만화 드래곤볼에서 자주 보아 왔지만, very 이후의 용어들에서 super , ultra 등의 단어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거 보면 거기에 대한 사연들이 있나 싶기도 하다.

VLIW

관련된 기억 속의 super 와 very 의 싸움(?)은 컴퓨터 구조에서 보았던 superscalar VLIW (Very Long Instruction Word) 가 마지막이다. 하드웨어를 통으로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놀라운 접근이라 하겠지만, super , very 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에 대비해서 ‘겨우 이 정도로 이런 부사를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64 ~ 1024 bits 정도로 Very ?

여기까지의 전반적인 느낌은 very 라고 해도 뭐 별 거 아니네,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었던… 기억이고, 이후 많지는 않지만, V 가 나오는 용어는 victory 아니면 very 겠군.. 등의 성급한 결론들…

LSTM / LLM / LMM

시대가 바뀌면서 인공지능이 다시 들어온 후 논문들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되었다. NN, CNN, RNN 등 한글로 번역해도 도무지 못 알아들을 내용들을 뒤로 하고, Long / Large 라는단어들이 보이게 되었다. 딱히 한글 번역을 찾으려 하진 않았었지만, 그래도 약자에 쓰이는 것들이면 첫인상은 얼마나 길거나 크길래 등이었고, LSTM ( Long Short Term Memory ) , LLM ( Large Language Model ) , LMM ( Large Multi-Modal ) … Long / Short 은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뭐 그렇다 쳐도… LLM 의 Large 는 이정도면 많이 크군… 싶었다. 다른 단어를 선택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 정도…

Very 가 끼어들 타이밍이 없이 large인 상태로 숫자들이 마구 커져서였을까, 새로운 것들이 정신 없이 지나가는 상황이어서 very 가 낄 자리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Large 라고 해도 한국말로는 ‘거대 언어 모델’ 혹은 ‘초거대 언어 모델’ 이라 부르는 거는 직역보다는 잘 된 의역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ps.

‘초거대 언어모델’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초거대 AI’ 라는 말은 매우 불편하다. AI = 모델 이라고 단순화 시켜 버리는 것도 불편하고… 아마도 얕은 영어라고 해도 일을 영어로 먼저 배워서 생기는 불편함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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