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 용어 이야기 (4) - 깎다/쳐내다/굽다
개인적으로 영어가 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외국계 회사에서 서바이벌 모드로 일을 배웠던 내용들 중에서, 그럴 듯하게 한글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는 경험들이 있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모아 본다. 특히 동사 부분이 조금 더 두리뭉실했던 기억인데, 영어로는 make, build 면 어지간하면 다 되는 게 굳이 한글로 번역되면 의미가 다양해져서 그랬겠다 싶다.
표준어 사전 같은 게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나 말고 다들 잘 쓰고 있는 모르는 걸 배워 가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기도 했었는데, 이게 한글 영어 차이인지 세대 차이인지 등을 살짝 헷갈리긴 했었다.
(요구사항을) 깎다
sharpening requirement 에 가깝다 하겠다. 주로 non-tech 분들이 ticket / issue 를 만들어서 tech 쪽에서 가져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자세히 풀어 주는 행동이 여기에 해당하겠는데, 결과물을 나타내는 '깎아진' 이라는 표현은 한글로도 영어로도 잘 들어보진 못했다. 열심히 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단어였으리라..
sharpening 의 뜻 중에 칼을 간다는 느낌은 좀 과하고, 연필을 깎아서 준비한다 정도가 적당하니 좋은 번역이라 싶었다. 실제로 잘 다듬어진 product spec 이나 product requirement document 등이 과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에 좋은 기억들이 남아 있다.
(티켓 or 이슈를) 쳐내다
JIRA 와 같은 이슈 트래커 툴들과 일하는 방식에 따라 ticket 이라 부르기도, issue 라 부르기도 하는데( 구글에서는 한동안 buganizer-id 혹은 bug id 라고만 불렀던 기억이다. 지금은 issue tracker 라고 본 거 같은데.. ). 이것을 resolved / done / closed 상태로 만들어 내는 것을 쳐낸다고 많이들 불렀다.
아마도 개인 혹은 팀의 TODO list 에서 쫓아내는 개념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한번에 된다. 그리고 이게 입에 붙을 때 꽤 찰진 느낌이 나서 좋았던 기억이다. 주로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 '그거 쳐내면 좋잖아요..?', 'Good. 잘 쳐 내셨어요.' 등... 한글의 격음이 주는 자그마한 쾌감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미지를) 굽다/말다
docker / k8s / container 등이 널리 쓰이면서 deploy / rollout / launch 등의 단어들과 함께 구워서 내보낸다 라는 의미로 꽤 들었던 기억이다. 분명히 이건 CD-ROM 을 굽는 burn 에서 왔을 것이고, 영어로는 그냥 무심하게 build an image 로 쓰이고 있을테니 시대를 살짝 역행하는 느낌의 간극이 있다 하겠다.
비슷한 context에서 '말다' 도 들어 본 기억인데, 이것저것 섞어서 이미지 만들 때 상황을 나타냈었던 기억인데, 워낙 '굽다'가 강해서 굽는 것을 보조해 주는 역할 정도라서 기억이 강하게 남지 않고 있는 거 같다. 김밥을 말다에서 왔다는 설과 밥을 국에 말다에서 왔다는 설 둘 다 설득력이 있다..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