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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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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런의 새로운 콘텐츠,
다양한 직무와 직군 사람들의 성장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시골에 사는 어머니만을 위해 버스 알림 앱을 개발한 대학생 이야기, 뉴스나 SNS에서 보신 적 있나요?
인프런은 해당 뉴스의 주인공인 서희찬 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서희찬 님은 공부뿐만 아니라 동아리, 앱 개발, 대외 활동, SNS 등 수많은 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셨는데요.
개발자라는 직업이 본인과 안 맞다고 생각했던 신입생 시기를 지나, 미국에서 로봇 공학을 연구하게 되기까지 수많은 경험과 고민, 그리고 변화를 거듭한 서희찬 님의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에디터 셰리 🐰
안녕하세요, 저는 동국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서희찬입니다. 사업적으로는 나만의 네컷 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전국 대학생 IT 연합 동아리인 구름톤 유니브에서 4기째 총괄 활동을 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dev_seochan'이라는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올 2월 대학교를 졸업했고, 작년 여름에 인턴 활동을 했던 카네기 멜런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에서 로봇 공학 연구자로 오퍼를 받아서 미국 출국을 준비 중이에요. (* 인터뷰 시기는 2월로, 3월 초부터 미국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원래 의사가 꿈이었어요. 재수도 했었는데, 결국 소위 말하는 '성적에 맞춰' 멀티미디어공학과에 입학했고 21살에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관심으로 전공을 선택한 게 아니라서 컴퓨터 공학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경험이 없었어요. 당연하게도 강의 내용을 따라가는 게 너무 어려웠는데, 파이썬으로 테트리스 게임을 만드는 동기들을 보니까 너무 현타(?)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첫 학기만 마치고 도망치듯이 입대를 해버렸어요.
군대에서 다시 수능을 도전하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컴퓨터 공학과로 전과하고 나의 역량을 많이 쌓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수능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수능 공부하듯이 코딩을 공부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낮에는 아르바이트, 밤에는 공부하던 그때.
전역 직후부터 복학할 때까지는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았어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와 코딩 공부를 병행했거든요. 이 시기에 저만의 루틴이 있었는데요. 새벽에 출근하는 버스에서 무료 강의를 듣고, 점심시간에 핸드폰으로 코딩하고, 퇴근하고 집에서 또 코딩하고... 블로그도 열심히 했어요.
🎙 막간 인터뷰
Q. 희찬 님의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A. 변화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내향적이고 남에게 관심이 없는 성격을 타파하려고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요. 살면서 반장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동아리 회장을 덜컥 맡기도 하고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좋은 인사이트를 너무 많이 얻었는데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교내 IT 동아리를 개선하는 일도 했어요. 발로 뛰면서 후원금을 받고, 교내 해커톤을 운영하고.. 너무 바빠서 흔히 대학교 하면 떠올리는 낭만은 많이 누리지 못했지만, 후회 없는 대학 생활이었어요.
처음엔 서버를 개발하거나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걸 많이 했는데, 이걸 보여줄 곳이 없더라고요. 어머니한테 이런 공부를 한다고 보여드려도 '이게 뭐야' 하시고요. 그러다 인프런에서 MBTI 테스트 만드는 강의를 수강하면서 처음으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서비스 배포를 경험하게 됐어요. 저의 서비스가 전국 각지에서 이용되는 걸 보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눈에 보이는 서비스가 있으니까, 어머니도 제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이해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개발의 매력을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서비스로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구나 생각했어요. 프로그래밍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전 세계가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개발자는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혼자 뭐든 만들 수 있잖아요. 원재료 구매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서든 아이디어를 구현해 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그러니까 사람들이 제가 개발한 서비스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저의 생활에 아무런 타격이 없고요. 그런 부분에서 개발자라는 직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보통 제가 필요한데,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앱스토어 [사진 및 비디오] 부문 3위까지 올랐던 '나만의 네컷' 앱도 그런 필요성에서 출발했어요. 동아리에서 단체 해커톤을 준비할 때 참가자분들이 추억을 남기면 좋을 것 같아서 포토 부스 대여를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고민되더라고요. 그러던 중 친구들과 놀다가 코스처럼 인생네컷 사진을 찍었는데요. 화면을 터치해서 촬영을 시작하고,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을 화면으로 보는 그 프로세스를 보면서 '이 정도면 내가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패드로 네컷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앱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나만의 네컷' 앱은 원래 행사 당일에만 쓰려고 만든 거였어요. 심지어 비율 설정이 잘못되어서 사진을 찍으면 오이(?)처럼 나오더라고요. 그런데도 좋아해 주시는 참가자분들을 보면서, 이 앱을 제너럴하게 발전시키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른 일들을 하느라 정식앱 출시는 조금 늦게 준비했지만요.
지금은 커스텀 프레임도 제작할 수 있고, 기업 행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우드락 포토 부스를 제작하고 배송하는 것까지 BM을 확장했어요. 실제로 교회 캠프, 졸업식, 경찰서, 병원, 대기업 등등 정말 다양한 곳에서 앱을 이용하시더라고요. 특히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일식당에서 제가 만든 서비스가 쓰이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놀랐어요. 내가 만든 서비스가 해외에서도 이용되고 있다는 게 좋았어요. 포토 부스 대여가 너무 비싼데, '나만의 네컷' 덕분에 저렴하게 가게를 홍보할 수 있어 좋다는 소상공인분들의 연락도 많이 받아서 뿌듯했어요. 그렇게 '나만의 네컷'은 지금의 5인 기업 형태로 성장했습니다.
나만의 네컷 첫 사용! (출처: 서희찬 님 블로그)
작년에 일본 여행을 갔는데, 공항이 엄청 복잡하더라고요. 그걸 영상으로 찍어서 제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댓글 반응이 흥미로웠어요. 제 영상을 보고 공항에 일부러 일찍 갔는데, 생각보다 한산해서 너무 오래 기다렸다. 영상 덕분에 공항에 더 일찍 갔고, 늦지 않게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반응으로 나뉘었거든요. 댓글을 보면서 공항의 혼잡도를 쉽게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작업했어요.
사실 공항의 혼잡도는 인천공항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서비스를 찾는 여정이 복잡하고, 눈에 잘 띄지 않았거든요. 저는 원하는 정보를 더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작업했어요.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던 버스 앱도 배차 간격이나 도착 예정 시간 관련해서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의 정식 앱 출시 문의가 많았어요. 깃헙 레버리지 라벨을 추가하는 게 은근히 귀찮은 작업이라 한 번에 등록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사용하셨고요. 제가 필요해서, 제가 귀찮아서 만든 것들인데, 다른 사람들이 공감해서 함께 사용하는 게 신기했어요.
🎙 막간 인터뷰
Q. '좋은 서비스'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유저에게 편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라면 이 서비스를 쓰고 싶을지를 항상 고려해요. 제가 쓰지 않는 서비스를 남에게 권유할 순 없으니까요. 여러 서비스를 만들면서 느낀 건데, 어떤 서비스든 본질만 만들고 출시한 다음 유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기능을 추가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개발자 생태계엔 기여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는데, 유저와 제작자 사이에는 그런 문화가 없잖아요. 그래서 '나만의 네컷'에 기여하기 페이지를 만들어서 유저의 아이디어를 받고, 채택되면 서비스 기여자 명단에 추가하는 걸 시도했는데요. 그때 유저 아이디어가 300개 이상 쌓였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어요. 유저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고, 유저의 충성도도 올릴 수 있어 좋더라고요.
대학교 4학년이 되면 진로를 결정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동안 프론트엔드, 백엔드 구분 없이 폭넓게 개발을 했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작년 2월, 해외학술탐방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가게 되었는데요. 그때 실리콘밸리에서 인턴을 하던 친구를 만났는데, 뭔가 그릇의 차이 같은 게 느껴졌어요. '나는 왜 구글에 갈 생각을 못했을까', '왜 나와 내 동기들은 네카라쿠배만 가려고 할까' 하는 생각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진지하게 삶의 목표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생각이 많은 편이라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내 삶의 목표가 뭘까', '왜 인류는 번성할까'까지 이르게 됐는데요. 인류가 도전 속에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발전을 이룩했으니 나도 인류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기술 발전의 흐름을 생각해 봤어요. 2000년대는 인터넷, 2010년대는 스마트폰, 지금은 AI가 기술과 혁신의 중심이잖아요. 다음은 아마 로봇일 거고요. 그래서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카네기 멜런 대학교(CMU, Carnegie Mellon University)에서 짧게 인턴을 하게 됐습니다.
인턴 시절의 희찬 님.
나름 야망을 품고 갔는데, 사실 연구는 살면서 처음이었어요. 로봇에 대한 지식도 이론적인 부분만 아는 정도였고요. 인턴은 처음이라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누구도 저에게 일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처음엔 조금 막막했는데, 제 밥그릇이 없다면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개발자로서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익숙하니까 그걸 강점으로 접근해 봤어요. 그래서 선행 연구를 보면서 아키텍처 디자인을 새로 하고, AI가 돌아가는 환경을 실제로 보이게 하기 위해 웹에 30개 정도의 페이지를 만들어서 교수님께 발표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후 교수님의 주도로 석박사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구 내용을 발표할 기회도 얻게 됐어요. 그때 저의 연구 내용의 부족한 점을 찾아 지적하기보단 보완할 점을 채워주시려고 하는 열정적인 분위기가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심지어 저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아프리카와의 미팅이 진행되기도 했는데요. 미국에서 연구하면 나의 아이디어가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교수님의 제안으로 인턴 기간의 연구를 한국에서도 계속하게 되었고, 오퍼까지 받게 됐어요.
전 이미 인생 계획이 있어요. 이제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게 될 텐데, 논문을 위한 연구가 아닌 실제 산업에 이용하기 위한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게 목표예요. 그리고 테슬라에 입사해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지능을 연구하고 기여하고 싶어요. 로봇 상용화의 기여하는 게 저의 1차 꿈입니다. 60살 정도 되면 제가 개발한 로봇과 IT 플랫폼을 결합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본사를 한국에 설립하고 싶어요.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개발자를 지원하는 회사를 만들려고 해요. 사람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에 담담한 문화를 만들고,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사실 한때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기여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기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너무 거창한 것 같아 이야기하기가 민망하달까. 취업 관련해서 고민이 많았을 땐 미국에 있을 때도 많은 분들과 티타임을 했는데, 그때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들도 사회 기여를 인생 목표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그걸 실현하는 방법을 동료들과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젠 당당하게 저의 목표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성장은 어제의 나와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입니다. 익숙한 삶은 편하지만, 그만큼 고이기 쉽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을 때, 보통은 익숙하고 빠른 하나의 길을 이용하잖아요. 그런데 복잡하고 오래 걸리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집에 가는 걸 시도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고착화된 루틴을 벗어나는 게 저의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은 언젠가 써먹을 수 있다고 믿어요.
저의 좌우명이 'I'm developing for our lives'인데요. 여기서 'Develop'이 코딩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성장한다는 의미도 있잖아요. 전 프로그래밍을 '도구'로써 잘 활용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거든요. 그러다 보니 많은 정보를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프론트엔드, 백엔드 같은 파트에 국한되기보단 지금 만들고 싶은 서비스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공부하고 있어요.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익숙한 구역을 벗어나는 게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익숙한 곳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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